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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지은이 모리스 로사비(Morris Rossabi)
콜롬비아 대학교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 시티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이자 콜롬비아 대학교 동아시아·내륙아시아 역사학과의 외래 교수로 활동하면서, 중국사와 중앙아시아사를 연구하고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Modern Mongolia: From Khans to Commissars to Capitalists(2005), Bounty from the Sheep: Autobiography of a Herdsman(2000, 공저), Voyager from Xanadu: Rabban Sauma and the First Journey from China to the West(1992), Jurchens in the Yuan and Ming(1982), China and Inner Asia from 1368 to the Present Day(1975) 등이 있으며, 편집한 책으로는 Governing China's Multiethnic Frontiers(2005), China among Equals: The Middle Kingdom and Its Neighbors, 10th-14th Centuries(1983) 등이 있다.
옮긴이 강창훈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역사책 기획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강창훈
목차
- 1장 초원의 나라, 세계를 향하다
몽골 제국의 탄생
칭기스 칸의 계승자들
아들을 칸으로 키워낸 어머니
쿠빌라이의 다국적·다인종 참모들
톨루이 가문, 권력의 정점에 서다
2장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
대리 원정―쿠빌라이, 리더십을 증명하다
정주 문명에 다가가다
관용으로 제압한 종교의 대립
실패로 끝난 뭉케의 남송 원정
대칸 계승을 위한 투쟁
3장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가는 길
아릭 부케를 제압하다
이단의 반란을 진압하다
쿠빌라이의 이상적인 내조자, 차비
중국 통치에 걸맞은 ‘맞춤형’ 통치
4장 ‘정복자’ 쿠빌라이
‘야만의’ 정복자, ‘문명의’ 남중국을 통치하다
고려를 정복하다
1차 일본 침입, 폭풍에 지다
중앙아시아의 도전에 직면하다
5장 ‘정치가’ 쿠빌라이
코스모폴리탄적 사회·경제의 시스템
경제 프로그램
군사 문제―집중과 배제
몽골적 요소와 중국적 요소가 결합된 사법 시스템
유학자 참모들을 포섭하다
모든 종교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다
마르코 폴로, 쿠빌라이를 찬미하다
6장 문화의 후원자, 쿠빌라이
만국 공용 문자와 구어체
원대의 희곡과 기타 문학들
회화 분야의 혁명적 발전
장인을 귀하게 여긴 몽골인
세계주의자, 그러나 몽골 고유의 것을 사랑하다
7장 부실 경영과 중국인의 반응
이슬람교도 재무대신 아흐마드
불간섭 원칙으로 남송을 통합하다
대운하, 재앙의 물길
좌절된 노세영의 재정 정책들
상가와 양련진가
후퇴하는 종교 관용 정책
8장 칸 중의 칸, 스러진 영광
가미카제―일본 원정, 또 한 번의 실패
동남아시아 원정
반란들, 흔들리는 통치력
칸 중의 칸이 스러지다
미주
참고문헌
1.서양언어 참고문헌
2.동양언어 참고문헌
찾아보기
쿠빌라이 칸 연보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몽골 제국, 세계를 호령하다
비록 한 세기도 채 지속되지 못했지만, 몽골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가 비로소 이어져 수시로 폭넓게 교류하는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열었다. 몽골인들은 새로 획득한 영토에서 일단 안정과 질서를 어느 정도 이룩하고 나서는, 그 지역이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않았다. 그들은 몽골이 지배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에서 여행을 촉진하고 장려했다. 아시아의 물건들이 대상大商의 발길을 따라 유럽에 이르자 이들 상품에 대한 유럽인의 수요가 급증했고, 이는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을 찾도록 자극했다. 그리하여 몽골 시대는 간접적으로는 15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촉발시켰다.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의 발견과,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서쪽으로 인도를 찾아 나섰던 콜럼버스의 노력으로, 대항해 시대는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21-22)
명실상부한 다국적 연합군
쿠빌라이가 이 원정을 위해 선발한 지휘관들은 그가 구사한 인사 정책의 면면을 다시 한 번 잘 보여준다. 그는 배타적으로 몽골인만을 사령관으로 선발하지는 않았다. 전체 지도부를 단일 민족으로 구성하지도 않았다. 가장 최근에 반기를 들어 쿠빌라이에게 남송의 정치·군사적 허약성을 알려준 유정과, 쿠빌라이가 즉위하기 전에 몽골 측에 가담한 사천택은 가장 이름난 중국인 장군이었다. 가장 명성이 높은 사령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릭 카야(Arigh Khaya)는 위구르인이었고, 아주(A-chu)는 포위전 참가를 위해 파견된 몽골인이었다. 양양 최후의 전투에서 포병 부대를 지휘한 이스마일(Ismail)과 알라 앗 딘(Ala-al-Din)은 중동의 이슬람교도였다. 고려인과 여진인은 포위전이 벌어지는 동안 전선을 건조했다. 양양 전투에 참여한 군 지휘관과 부대는 우리가 오늘날 흔히 이야기하는 연합군을 구성하고 있었던 셈이다. 쿠빌라이가 자신의 대의명분을 위해 비몽골계를 포섭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활용했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또 다른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146-147)
‘야만’의 유목민족 몽골은 어떻게 ‘문명’의 정주민족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1279년 쿠빌라이는 남송의 잔여 지역을 평정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아마도 더욱 어려운 과업에 직면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복종시킨 남송 사람들의 협력을 얻어야 했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남중국의 자원이나 탐내는 ‘야만인’ 정복자로 보여서는 안 되었다. 쿠빌라이는 몽골인을 위해 종사하되 지역민을 심하게 억압하지는 않는 정부를 설립해야 했다. 정책과 인사 과정에서 연속성을 유지해야만 남송의 통치권을 몽골로 이양하는 과정이 부드러워질 터였다. 쿠빌라이는 남송을 함락시키자마자 곧바로 그의 군대가 신민들을 차별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1278년 9월 그는 수이게투와 포수경에게 새로운 신민들을 적절히 예우하라고 명령하고, 군 장교들에게는 새로 얻은 영토의 백성들이 농업과 무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허가하라고 명령했다. 쿠빌라이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몽골의 통치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63-164)
전문 직업군에 대한 편견을 없애다
쿠빌라이는 차별적인 관행들을 일소하고 중국인 왕조 치하에서 그리 잘 대접받지 못했던 전문 직업군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는 비록 농민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농업 생산을 부양했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상인, 의사, 과학자는 더 큰 혜택을 입었으며 조정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몽골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은 대토지를 소유한 엘리트층이었다. 기존에 중국을 지배했던 학자 관료 계층의 태반이 이 계층에서 배출되었다. 쿠빌라이와 몽골인들은 그들 대신 이 나라의 지배자가 되었다. 과거 시험을 치를 수 없었던 중국인 엘리트층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일부는 몽골인들에게 묵종하여 복무했고, 어떤 이들은 공공 생활을 접고 은둔하거나 예술에 탐닉했다. 또 어떤 이들은 몽골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특히 남중국에서 잠재적인 분열 세력을 형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빌라이는 정부 조직들을 존속시켜 학자 관료들에게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211-212)
관용적인 종교 정책
쿠빌라이는 중국의 통치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학자 엘리트 이외의 사람들도 당연히 포섭해야 했다. 중국 내의 다른 종교들도 달래주어야 했다. 쿠빌라이는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종교들을 포섭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그는 중국인 학자들에게 유교 시스템의 지지자로 보이게끔 자세를 취한 반면, 티베트와 중국의 불교 승려들에게는 열렬한 불교도임을 강조했다. 마르코 폴로처럼 유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백성들이 기독교
출판사 서평
1. 기획 의도
국내 최초의 쿠빌라이 칸 평전
몽골 대제국의 창업자 칭기스 칸은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천 년간 가장 중요했던 인물”로 선정할 만큼 관심을 받았고, 그 리더십을 배우자는 열풍 아래 수많은 연구와 단행본 출간이 이어졌다. 총인구 100만, 군사는 고작 10만 명의 유목 부족을 이끌고 유라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였던 칭기스 칸의 리더십은 현재에도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칭기스 칸의 손자였던 쿠빌라이는 그 역사적 중요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최초의 이민족 중국 황제이자 몽골 세계 제국을 통치한 쿠빌라이의 시대는 ‘정복’에서 ‘통치’로의 발상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팍스 몽골리카’를 구축한 쿠빌라이 칸은 초원 지대에서 온 유목민 정복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정주 사회의 실질적 통치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몽골 통치자가 되었다. 이 책은 관용과 통합으로 세계 제국을 ‘통치’한 쿠빌라이 칸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로, 그를 알고자 했던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국내 최초의 쿠빌라이 칸 평전이다.
관용과 통합의 정치가, 몽골인이자 세계인을 꿈꾸다
유목민적 특성을 극대화하여 세워진 몽골 제국은 ‘약탈’은 있었지만 ‘생산’은 없었고, ‘파괴’에는 익숙했지만 ‘건설’에는 서툴렀다. 칭기스 칸의 손자였던 쿠빌라이의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을 통치하는 동안 인종과 나라를 가리지 않고 관료들을 선발하여 새로운 통치 체제를 만들고 세제稅制를 고안했으며 농민, 유목민, 상인의 권익을 촉진시켰다. 또한 자유교역과 자유로운 교통, 지식 공유, 종교적 관용 정책 등을 펼쳤다. 각 민족들의 고유한 전통 문화를 장려했고, 극장, 예술, 수공업, 과학, 의학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이 이루어졌다. 쿠빌라이 칸의 ‘실용주의’의 실효성은 지금도 그대로 통용되며, 인종과 종교, 사안에 따라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을 꾀하는 그의 모습은 새로운 리더십의 전형이 될 만하다.
전문 학자가 새롭게 부활시킨 쿠빌라이 칸
그동안 출간된 쿠빌라이 전기는 중국의 정사 『원사』를 토대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사 중심적인 시각이 다분했고, 쿠빌라이는 주로 ‘찬란한 중국 문명에 동화된 개명 군주’ 정도로 묘사되기가 일쑤였다. 저자 모리스 로사비는 『원사』는 물론이고, 페르시아의 역사가 라시드 앗 딘의 『집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고려의 정사 『고려사』, 그리고 러시아, 아랍, 아르메니아, 시리아의 연대기 등 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쿠빌라이 관련 기록들을 모두 한곳에 모았다. 다양한 언어권에서 나온 다양한 시각의 사료들이 그의 손끝에서 종합되고 분석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쿠빌라이 칸 일대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 주요 내용
정복하는 것보다 정복한 지역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
『쿠빌라이 칸, 그의 삶과 시대』는 칭기스 칸이 죽은 후 몽골이 어떻게 성공 스토리를 이어갔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중국 전역을 최초로 정복했을 뿐 아니라 직접 통치하기까지 한 유목 민족의 칸 쿠빌라이를 그 주역으로 내세운다. 그는 중국 전역을 다스려야 하는, 어쩌면 칭기스 칸보다 더 어려운 역할을 맡았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전한前漢 제국 초기 유학자 육가陸賈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복하는 것보다 정복한 지역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은 지극한 상식이다. 이 책이 가져다준 쿠빌라이 칸의 첫인상은 ‘실용의 정치가’라는 이미지였다. 쿠빌라이는 유목민의 기질상 중국의 광활한 토지를 모두 목초지로 바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기마병으로 중국을 장악했으니 중국 군대를 모두 기마병으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공자와 맹자를 들먹이며 잘난척하는 중국 유학자들보다는 같은 몽골인들로 관료 집단을 채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별로 와 닿지 않는 종교들을 모두 억압하고 몽골 고유의 신앙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자를 창제하여 전 신민들에게 강요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토지를 목초지로 바꾸려는 몽골인을 처벌하여 중국 농민의 마음을 샀다. 공성전을 벌여야 할 때는 기병보다 보병을 기용했고, 강과 바다를 만났을 때는 해군을 증강했다. 중국인들을 ‘맞춤형’으로 통치하기 위해 중국 유학자들을 기용하고, 중국의 행정 시스템을 응용했다.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를 장려했을 뿐 아니라 서방에서 온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적극 수용했으며 최소한 배척하지는 않았다. 파스파 문자를 창제하긴 했지만, 여러 민족들의 고유 언어들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이와 같은 쿠빌라이의 ‘실용주의’야말로, 몽골이 중국을 장기간 통치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서평
“『쿠빌라이 칸, 그의 삶과 시대』는 아마 앞으로 오랫동안 쿠빌라이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잘된 서술로 남아 있을 것이다. 로사비는 학자다운 세심함으로 꼼꼼하게 자료를 해석해가며 우리에게 그가 다스린 정착민의 눈에 비친 거침없는 유목민 지도자의 매혹적인 초상을 선사한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로사비는 놀라운 이중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는 역사의 가장 주요한 인물들 중 한 명에 대해 처음으로 진중한 학술 연구서를 저술하여 앞으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것을 참조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그는 중요하지만 덜 알려진 과거사의 측면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흥미롭고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게끔 서술하였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쿠빌라이칸은 그저 단순한 전기 이상이다. 13세기 중국과 중앙아시아 모두에 대한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집대성한 책이다.”-『뉴리퍼블릭』
“모리스 로사비는 이 인상적인 전기를 학술적인 용도로 썼지만 일반 독자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세부사실들을 통해 쿠빌라이와 그의 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며 피정복자들에게 정복당한 침략자의 역설적인 초상을 그려낸다.” -『보스턴 글로브』
기본정보
ISBN | 9788995998953 |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11월 15일 | ||
쪽수 | 503쪽 | ||
크기 |
153 * 224
mm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Khubilai Khan : his life and times/Rossabi, Morris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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