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교회답게 하라"했던 진짜 목사님

문성근 (배우) 2011. 3. 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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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죽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을 통해 온다. 축복은 가난을 통해 오고 부활은 죽음에서부터 온다.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의 세력을 극복한다. 이것이 생명의 역설이다."(제6차 WCC 총회 박형규 목사 기조 발제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 중에서)

문성근 (배우)

박 목사님 생을 정리한 책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도 참석하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문익환 목사(필자의 부친)가 늘 '운동의 선배'로 깍듯이 모셔온 친구분이신데…. 어느 모임에서나 좋은 목소리(배우이다보니 목소리에 민감하다)로 늘 웃음을 주실 때, 그 고통스러운 삶을 사시면서 어찌 저렇게 늘 여유로우실까 감탄해왔다. 그 내공….

밤 11시쯤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장을 덮은 시간이 새벽 4시였다. 이후 한 시간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긴 세월 갖가지 고난은 그저 막연히 느꼈던 '대단한 분'을 넘었고, 무엇보다 예수가 자기 마을에서 인정받지 못했듯 박형규 목사도 같은 처지라 생각하니 깊이 아프다.

<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 박형규·신홍범 지음/창비 펴냄

1923년 경남에서 태어난 박 목사님의 일생에는 우리 현대사의 파란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 박 목사는 현대사의 파고에 직면한 매 순간 휩쓸리거나 압도당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한 뒤 맞서며 '길'을 찾아왔고, 어떠한 고난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1973년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예배사건'으로 처음 감옥에 간 이후 박 목사는 여섯 번 투옥되었지만 고문과 투옥도 그를 막지 못했다. 도대체 그 지치지 않는 '열정'은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지혜롭게 균형점을 찾았던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는 가정 내에서는 '유교적 심성의 아버지와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교회에서는 율법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에서는 좌익과 우익의 양극단 사이에서 부대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관념이 아닌 현실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았고 해답을 찾아갔다.

박 목사는 항상 공부했고, 자기 성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약한 몸,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병마가 '바울의 가시' 같은 것이었다. 살면서 그는 늘 참목사가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라'는 칼 바르트의 말을 신조처럼 가슴에 품고 산 그의 삶은 고난과 극복, 용서와 화해로 풍요로웠다. 정말 고통에는 뜻이 있나보다.

문성근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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