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헌정 문란” “의견일 뿐” 엇갈려…대법원 “엄중 주시”

2020.11.26 21:17 입력 2020.11.26 23:04 수정 허진무·유설희·조형국 기자

윤 총장이 공개한 ‘재판부 불법사찰 문건’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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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 출신’·‘검찰에 적대적이진 않은 편’ 등의 내용
법무부 “중대 범죄”…윤석열 측 “사찰 아냐, 상식적 판단을”
여당 “재판 독립성에 심각한 침해”…야당 “모든 방법 영끌”

윤석열 검찰총장 측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판사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한 문건을 26일 공개했다. 추 장관의 의혹 제기에 사찰 여부를 시민이 판단해 달라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추 장관은 대검 감찰부에 윤 총장을 수사의뢰하는 것으로 맞섰다. 대법원은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추 장관이 내놓은 징계 사유 6개 중 가장 논란이 된 혐의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현 수사정보담당관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의혹 사건이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 중요 사건 재판부에 대해 이른바 ‘양승태 사법부 블랙리스트’라고 불리는 ‘물의 야기 법관’ 여부 등의 정보를 수집한 문건을 만들어 불법사찰했다는 혐의다.

윤 총장 측은 이날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제목의 9장짜리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사법농단 사건’ 재판부의 한 판사 세평으로 “행정처 16년도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포함(술을 마시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 당직법관으로서 영장심문기일에 불출석, 언론에서 보도)”라고 적힌 부분이 있었다. ‘조국 사건’이나 ‘울산 사건’ 담당 재판부 관련 부분에는 물의 야기 법관 관련 언급은 없었다. 검찰은 8개 사건의 재판장(7명), 주심(9명), 배석판사(10명)의 출신 학교, 주요 판결, 가족관계, 재판 진행 특징 등을 조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들의 세평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검찰에 적대적이진 않으나 변호인의 주장을 많이 들어주는 편” “재판에서 존재감 없음”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윤 총장 변호인인 이완규 변호사는 “문건을 공개해 사찰인지 아닌지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에 맡겨 보자고 생각했다”며 “변호사들도 담당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재판부 성향을 파악하고는 한다. 업무자료에 개인 관련 정보가 있다고 해서 사찰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문건에 이름이 오른 판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A판사는 “법관의 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해 분류하고 가공한 정보를 배포한 것이 사찰이 아니라면 뭐가 사찰이냐”며 “검찰이 판사를 사찰하고 명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헌정 문란”이라고 말했다. B판사는 “사찰은 아니다”라며 “검찰이 법관을 평가한 의견일 뿐이지 않으냐. 경찰이 동향 정보보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관 사찰이 언급되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수사나 징계 등 진행되고 있는 절차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이날 윤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에 수사의뢰했다. 법무부는 “실제로 검찰에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하기도 하는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수사의뢰는 윤 총장의 문건 공개에 대응하는 여론전 성격도 있어 보인다. 이미 대검 감찰부는 영장을 발부받아 전날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미 수사가 개시된 사안에 재차 수사의뢰를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법무부는 답변하지 않았다.

대검 감찰부가 압수수색에서 다른 사찰 문건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대검 감찰부는 수사정보담당관실에서 확보한 컴퓨터 자료를 디지털 포렌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 장관은 대검 감찰부에 “윤 총장의 추가적인 판사 불법사찰과 사적 목적의 업무 등 비위 여부를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윤 총장의 변호인은 “오늘 공개한 9장이 전부”라고 밝혔다.

김남국·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적법한 직무 범위를 넘어 작성된, 재판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추 장관이 어설픈 직무배제 조치를 만회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영끌’하는 듯 보인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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