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고지서./조선일보DB

탈(脫)원전 청구서가 날아온다. 탈원전·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한국전력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가 유가 등 원가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도록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정부와 한전은 17일 전력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내년 1월부터 시행하고, 저소득층을 위해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던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 제도를 2022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 비용(RPS)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ETS) 등 기후·환경 비용을 전기요금 고지서에 별도 항목으로 분리 고지하기로 했다.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 시행에 따른 석탄발전 감축 비용도 전기요금에 추가된다.

연료비 연동제는 국제유가 등 연료비의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이 인상 또는 인하되는 구조다. 정부는 ‘연료비 조정요금’ 항목을 신설해 매 분기마다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주기로 전기요금에 반영키로 했다. 연료비는 관세청이 고시하는 액화천연가스(LNG)·석탄·유류의 무역통관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유가 등 원가 변동분을 제때 요금에 반영하지 못하고 2013년 이후 조정 없이 운영돼 왔다.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면 전기요금도 도시가스 비용이나 휘발유 등 기름값처럼 국제 가격 변동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다.

코로나발(發) 글로벌 경기 침체로 국제 유가가 하락한 지금과 같은 경우라면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전기요금이 인하될 수 있다. 정부는 당장 내년 1월 월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경우 월 전기요금이 5만5080원에서 5만4000원으로 1080원 인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기가 다시 살아나 국제 유가가 오를 경우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국제 유가가 배럴당 42.7달러에서 꾸준히 상승해 내년 하반기엔 48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기요금에 포함된 기준 연료비가 배럴당 51달러 수준이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내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65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가가 현재 기준 연료비인 50달러 초반대를 넘어서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부는 탈원전 정책으로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값싼 원전과 석탄 대신 외국에서 전량 수입해 오는 값비싼 LNG와 재생에너지로 그 공백을 메우려면 전기요금은 장기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확정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도 원전과 석탄 발전은 줄이는 대신 LNG와 재생에너지는 늘리기로 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고 했지만, 탈원전·탈석탄으로 값싼 발전원 대신 비싼 LNG와 재생에너지 등을 늘리면 연료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고, 결국 연료비 연동제로 한전의 적자를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라며 “탈원전에 대한 모든 책임과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