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터뷰]'배 목수를 아시나요?', 3대째 속초서 배 만드는 최윤성 씨
강원도 속초의 자연이 만든 방파제 청초호에는 6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칠성조선소가 자리하고 있다. 실향민 최칠봉 씨(73년 작고)가 1952년에 세웠다. 6·25 전쟁 당시 부산까지 피란을 갔던 최 씨는 고향 가는 길목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 속초에 터를 잡았다. 청초호 일부를 메꿔 그 위에 조선소를 세우고 목선을 만들었다. 당시 ‘속초’ 하면 ‘오징어’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수산업이 호황이었다. 속초에서 잡힌 명태, 도루묵, 꽁치 등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속초에만 12개의 조선소가 있었을 정도로 조선업이 흥했던 시절이었다.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였다.
현재 칠성조선소는 손자 최윤성(37) 씨가 물려받아 운영 중이다. 어느덧 3대째다. 윤성씨는 작가의 길을 걷다가 운명처럼 다시 돌아왔다. “여섯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집도 조선소 안에 있었죠” 배의 모습을 항상 보고 살았어도 자신이 배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배는 생업이잖아요. 위험하고 돈도 잘 못 벌고. 즐거운 환경이 아니었죠”
그는 서울로 상경해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많았죠. 기억에 대한 작업을 주로 했는데 나무 쓰레기들을 주워와 배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상하게 배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되더라고요.”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의 결심은 굳어져만 갔다.
“배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길로 미국으로 건너가 메인주에 위치한 랜딩보츠빌딩스쿨에서 본격적으로 목선을 배우기 시작했다. “목선, 디자인, 복합소재에 대해 배웠어요. 배의 디자인부터 직접 만들어 판매까지 하는 과정이었죠.” 학교에 다니면서 그의 결심은 더 단단해졌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를 만들었어요. 한번은 손가락에 엄청나게 큰 가시가 박혀서 혼자 낑낑대며 가시를 빼내는데 막 웃음이 나는 거예요.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이제 제 자신이 왠지 진짜로 배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 뿌듯함을 평생 느끼며 살고 싶다고요”
공부를 마치고 지난 2013년 속초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제게 조선소는 놀이터였어요.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며 자랐죠. 집에서 문만 열면 배 만드는 모습이 보였어요. 냄새도 선명하게 기억나고요. 칠성조선소가 아니었다면 배 만드는 걸 시작도 안 했을 거에요”
조선소에 대한 기록 작업도 시작했다. “지금의 속초는 멋진 가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대죠. 그런데 곳곳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조선소’와 ‘배 목수’가 그것이죠. 이 두 가지는 속초가 관광지가 아닌 수산업의 도시였음을 알려줍니다” 오래된 항해일지와 선박 도면 등을 모았다. 도면 중에는 나무 합판 위에 그려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배 목수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구부러진 나무를 찾아다니고, 금강송같이 옹이 있는 걸 안 깨뜨린 채 틀어 붙여 배를 만들고, 목선 틈새에 창호지를 넣어 젖어 있으면 돈을 받지 않았다는 배 목수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어요” 그 결과 칠성조선소에서 평생을 일한 양태인, 전용원 목수의 기록을 담은 책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꿈은 아들과 함께 배를 만드는 것이다. “8살 된 아들과 가끔 영랑호에 가서 카누를 타요. 배를 놀이로써 즐겼으면 해요. 크지 않은 아담한 배를 아들과 함께 만들고 싶어요. 다행히 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 눕터뷰
「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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