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 지음, 북로드

 

가볍고 담담하게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모르고 지냈던 우리 옛날을 뒤집어 본 느낌이다. 한국의 전통마을은 민속촌에 박제되어 있는 초가집 군락이 아니고 내가 살았던 고향 그 동네였는데, 어느 틈에 나는 아스팔트 거리에서 콘크리트 건물이 고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 옛날, 후졌다고 생각한 동네가 사실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신경을 쓴 공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깨닫게 되다니.

 

저자가 건축을 하는 사람이다보니 건물과 마을에 관심이 많아서 답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써 놓았다. 하지만, 전통마을이라고 해서 남아 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요즘엔 "마을"이라고 부를말한 군락이 잘 생기지 아니하는 풍토가 아쉽다. 게다가 기껏 옛사람들처럼 낙향하여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 끼리끼리 살겠다는 닫힌 부촌들인데다가 옆 건물과 조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생뚱맞은 형태로 선 주택들이 대다수인 마을이다. 자연과 공존하거나 특별히 철학을 넣은 마을이 아니고 단순히 "끼리" 살고 한번 "과시"해 보고자 하는 마을이니, 선조들이 터를 보고 자연과 공존하고 이웃과 어울려 살려고 만든 마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책에서, 전통 마을 몇 개를 보여주면서 집 자체보다는 마을의 위치와 그 속에 있는 집들의 배치가 오묘하고 또 그 터에 마을을 연 입향조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설계했는지 잘 설명했다. 더구나 직선으로 꾸며 놓은 서구식 가옥들에 비해서 보일듯 말듯 속을 숨기듯이 집을 만들어 놓은 방식이 한편으로는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이 함부로 집안을 들여다 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게 아닐까 싶다. 개인 생활 보호를 주장하는 요즘에는 아무리 그렇다한들 대문(아니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웬만한 사생활은 다 보인다. 이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있지만 그 역시도 개인 생활 공간에 가깝게 되어 있으니 손님이 방문을 하면 결국은 다 볼 수 있지 않겠나.

 

옛날, 고향에서 동네 외곽을 감싸는 도로가 있고 또 마을을 관통하는 조그만 소로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골목길이 생각났다.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그 길을 걸어갈때마다 푸근하게 생각했던 그 느낌이 기억났다.

 

아파트가 많아졌고 이제는 예전처럼 철학을 가지고 마을을 만들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또, 그 옛날처럼 마을을 꾸미고 집을 그렇게 하자는 건 아니다. 그때 당시, 우리 어머님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새 식은 방구들에 열기를 넣고자 불을 지폈고 무쇠솥에 쌀을 얹어 밥을 했으며 불편하게 허리를 숙여 요리를 했다. 물 길어 오는 것은 오죽 힘들었으며 빨래는 겨울에 얼마나 고단했던가. 이제 와서 그 시절이 좋다하여 무작정 따르고자 한다면 이는 옛것만 좇아 새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는 우둔함을 말할 것이다.

 

다만, 저자가 말한대로, 우리가 사는 공간에 생각을 넣고 철학을 넣어서 다져 보자는 뜻이다.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필요한지 생각을 해 본다면 아무리 이사를 자주 가는 집이라고 한들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새집 증후군이니 뭐니하여 집조차도 편하게 여길 수 없는 시대라면, "내 집"을 가지는 목적보다도 "내 생활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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