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배명훈 칼럼] 환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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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그만두고 『타워』를 쓰기 전까지 2년 정도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 말은 나에게 아무 상처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그 장면을 언젠가 소설에 집어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서술자 시점에서 구경하게 된 셈이다. 그날 나는 내가 전업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일종의 특수 능력이다.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않고, 어느 순간 한발 물러나서 삶의 한 겹을 살짝 떠내는 일. 사람들은 글 쓰는 사람들이 지닌 이런 특징을 얄밉게 보기도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 프리랜서’라는 잘못된 이미지도 일부는 이 특수 능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프리랜서 시장은 온실이 아니고 작가가 겪는 고난이 가벼운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소설가는 저 일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삶의 한 겹을 살짝 분리해내는 일.


그렇게 분리해낸 삶은 작품에 담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사 간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삶을 돈으로 바꾼 셈이 된다. 이것이 ‘환금 소설’의 기본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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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금 소설이라는 말은 사실 농담이다. 예를 들어 돈 안 되고 번거롭기만 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을 본 동료 작가들이 위로의 말을 건넬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중에 환금하면 돼요.” 그러면 긴장이 확 풀린다. 게다가 나는 환금 활동을 정말로 성실하게 하기 때문에 그 말이 빈말로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잘 단련된 소설가는 이걸 어디다 쓰나 싶은 이상한 자원도 어떻게든 돈으로 바꿀 수 있다. 보통은 폐기 비용을 들여서 처리해야 할 나쁜 경험을 가지고도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과 중력가속도』 맨 앞에 실린 단편소설 「유물위성」은 사실 환금 소설이다. 몇 해 전 터키에 여행을 갔다가 테르메소스라는 옛 로마 도시에 투어를 간 적이 있는데, 투어 내용이 대단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쁘지 않은 코스였지만, 그 무렵에 머물던 곳이 안탈리아였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안탈리아는 지중해에 있는 유서 깊은 관광도시고, 테르메소스는 산꼭대기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이다. 등산을 좋아할 리 없는 나로서는 땡볕 아래에서 진행된 테르메소스 투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두 편의 소설이 탄생했다. 하나는 단편소설로서 나중에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라는 어린이책이 되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유물위성」이다.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는 안탈리아에서 발견한 기분 좋은 것들의 영향을 받았다. 도시 곳곳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을 적어놓은 메모는 ‘끼익끼익’이라 불리는 도시형 요정의 원형이 되었다. 그 유명한 터키 고양이들이 길바닥에 한가로이 드러누워 있고, 옛 로마의 성벽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중해 항구도시의 여유로운 마법이 좋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 에너지 효율이 높은 소설가는 좋은 경험뿐만 아니라 나쁜 경험도 빠짐없이 소설로 바꿀 수 있다. 어서 테르메소스 투어에 든 비용과 시간을 돌려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을 쓰는 강력한 동기다. 이 작업을 거치면 테르메소스의 시간도 안탈리아의 시간만큼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부가가치가 창출된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장편소설인 『은닉』 도 환금 소설이다. 그 겨울에 누가 체코 여행을 가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 겨울이 되면 유럽 전체에서 체코행 항공편만 자리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 체코 여행을 간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은데, 다들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겨울 체코는 너무 추워서 주요 관광지들이 몇 달간 아예 문을 닫는다. 맥주만 홀짝홀짝 퍼마셔야 하는 신세다. 물론 맥주가 기가 막히게 맛있기는 하지만, 어서 돈으로 바꾸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추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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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환금은 위로다. 별 이상한 데서 위로를 받네 싶겠지만, 실제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는 동료 작가들을 위로하다가 “나중에 돈으로 바꾸세요” 하는 말을 건넸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을 보면, 역시 작가들은 별 이상한 데서 위로를 받는 게 분명하다.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에 너무나 깊은 안도의 반응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거리다. 적어도 어떤 문제는, 내 인생을 통째로 휘감을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돈으로 바꾸라”라는 위로는 아무 데서나 남발할 게 못 된다. 일단 농담이라,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화해버리면 무례한 말이 될 위험이 크다. 특히 위로해야 할 고난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꿈이 좌절되는 일처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일 때는 더 그렇다. 어떤 고난은 살아가며 극복해야 하고 어떤 괴로움은 삶으로부터 분리해서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 분리되지 않는 고통을 분리해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위로가 될까.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 작가가 가장 괴로웠던 삶의 한 겹을 떠내어 작품 속에 다시 재현해낼 수 있다면 그 일은 역시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인간은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모든 괴로움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덜컥 패배를 선언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예측이라도 해야 하고, 예측조차 못 하는 일은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기록조차 하지 못하고 언어의 수면 아래에 침잠해 있는 고통은 얼마나 처참한가. 섬세한 언어는 뭉쳐 있는 응어리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도구다.


작가의 사회적 책무도 이와 관련 있다. 사회는 작가에게 통제나 예측 같은 멋진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런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가끔 그런 일을 하는 기관이나 무슨 위원회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불러줄 때도 있지만, 그곳에서 작가에게(특히 SF 작가에게) 바라는 것은 통제나 예측이 아니라 주로 상상이다. 작가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순간은, 공동체가 기록밖에 하지 못할 고통 앞에 섰을 때다. 혹은 아직 아무도 기록조차 하지 못한 아픔을 마주한 사회가 첫 기록을 애타게 기다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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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환금 소설을 옹호하고 보는 것은 삶을 글로 바꾸는 행위가 직업윤리와 관련된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번째 직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런 작가에게는 “나중에 소설로 쓰세요” 하는 조언이 잘 안 먹힌다. 첫번째 직업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소설로 옮기지 않는 것이 그들의 직업윤리이기 때문이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진 작가는 물론, 사회 활동가나 연구자처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작가도 첫번째 직업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소설로 옮기는 일에는 거부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것은 삶에 대한 태도 문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투쟁을 하면 된다. 즉, 데모를 하면 될 일을 소설을 써서 해결하려는 태도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러모로 타당한 이야기이니 유념하기 바란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전업 작가는 얄미운 존재다.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고, 심심하면 그놈의 서술자에 빙의되어 한 발씩 뒤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의견이겠지만, 작가는 인생이라는 전선에 배수진을 치고 나서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는 살아가는 일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진지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저 구경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작가라는 자연인의 한 걸음 뒤에는 남들에게는 없는 퇴로가 한 칸 더 마련되어 있어서 그렇다. 바로 ‘서술자’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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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삶이 자꾸 한 겹씩 분리가 돼서 ‘아, 나는 전업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결심한 작가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그 한 칸의 퇴로가 바로 직업윤리다. 그곳은 도피처다. 그리고 위안의 근거다. 작가 본인에게 가장 먼저 열리는 현실도피 공간이지만, 글로 써서 발표하는 순간 그 도피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개방된다. 그곳에서 독자는 삶을 관조한다. 우리를 짓누르는 이 고난은 우리 삶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며, 분리하고 객관화한 후 찬찬히 뜯어볼 수 있는, 그래도 되는 사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애초에 반쯤은 농담일 수밖에 없는 화두지만,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런 입장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소설가들이 남이 사는 이야기를 마구 가져다 쓴다는 속설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보통 작가들은 그런 식으로 소재를 가져다 쓰지 않는다. 삶의 한 겹을 얇게 떠내는 작업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다. ‘너, 마음에 안 드니까 소설에 써버리겠어’ 하는 마음가짐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가는 머지않아 경력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아주 미덥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일반론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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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일을 하는 데 SF는 특히 유용한 도구일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일단 현실도피에는 SF가 제격 아닌가?


SF는 현실의 삶을 반영하지만 현실 그대로를 내놓지는 않는다. 「유물위성」에는 테르메소스도 나오고 부업으로 가이드를 하는 고고학자 메흐멧도 실명으로 등장하지만, 혹시라도 메흐멧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실에 존재하는 어느 메흐멧도 고대 외계어를 연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의 누군가를 직접 지칭하지 않으므로 SF를 도구로 활용하는 작가는 좀더 용감하게 현실의 한 겹을 떠낼 수 있다.


또한 SF는 유용한 사고실험의 도구다. SF 자체를 사고실험의 문학으로 정의하는 사람도 많다. SF가 현실의 연장선을 긋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의미다. 현실은 때때로 말을 아끼곤 한다. 문학도 아닌 주제에, 함축하고 은유해서 그 의미를 표현하곤 한다. 예를 들어, 잘 짜여 있는 권력은 노골적으로 복종 행위를 강요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알아서 복종을 표현하는 행위를 하도록 암묵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을 뿐이다. 차별도,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생각보다 암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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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침묵하는 현실에 연장선을 그어버린다. 말풍선을 달아서 소리를 내게 만들기도 한다. 현실이 살짝 고개만 끄덕인다면, SF는 암시에 가까운 그 행위에 가중치를 부여해서 1분에 70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자동 로봇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총통각하』 에 실린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는 새로 뽑힌 대통령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동면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동면에서 깨어난 주인공들은 놀랍게도 그 대통령이 아직도 대통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다시 깨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재자의 치세는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렇게 200년 넘게 통치하는 독재자와 200년 넘게 동면하고 깨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010년경 현실 세계 어느 정권의 이야기지만, 그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현실 그대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이야기의 틈바구니에서 독자들은 숨 쉴 공간을 발견한다. 적어도 작가는 그러기를 바라며 글을 발표한다. 모른 척 시간만 보낸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말고는 그다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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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환금’이라니! 돈 이야기 같아서 불편한 독자가 있다면 부디 양해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소설을 매개로 한 환금 활동은 그다지 큰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른 글에서 이미 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행위는 이 업계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영리 활동이다. 딱히 영악한 짓이 못 된다는 뜻이다.


나와 가까운 동료 작가들은 환금 소설 이야기를 재미나게 받아들인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경계를 풀고 푸하하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을 짓는다. “아, 이거 글 써서 돈으로 바꾸면 돼요.” 그래서 나는 내가 대단히 성실한 환금 작가인 것이 마음에 든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이 글 또한 환금 소설이라는 개념을 환금하는 과정이다.


삶은 나의 원자재다. 생활 물가 상승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그러니 원고료도 물가 상승률만큼 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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