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하면 복(福)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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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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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호감이 가는 영화가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다는데, 이 영화로 그 복을 나눠 갖고 싶은 마음이랄까. 근데 찬실(강말금)은 영화 시작부터 지지리 복도 없다. 프로듀서로 의욕적으로 참여한 영화의 촬영을 앞두고 회식 자리에서 연출자가 그만 급상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화가 엎어지는 건 당연, 그래도 다른 작품의 프로듀서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웬걸, 찬실을 영화 현장의 살림꾼이라 극찬하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제작자는 태도가 돌변해 더는 찬실의 자리가 없음을 통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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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에 실업자가 된 찬실은 영화가 좋아 영화 일을 시작해 영화에 모든 걸 바쳤는데 이제 와 영화를 잃고 나니 남는 게 없다. 할 일도 없어, 모태 솔로로 연애한 적도 없어, 통장에 남은 돈도 없어, 영화(映畵)로 꿈꾼 영화(榮華)로운 나날은 개뿔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니다. 대신 생긴 게 있다. 사람이다. 삶이 바닥을 치면 남는 건 올라갈 일뿐이라고 영화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료가, 이웃이, 남자가, 심지어 유령까지 복으로 눈에 들어와 마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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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는 김초희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삶의 위기는 늘 느닷없이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미리 알 수 있어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진작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뒤엉켜버린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보지만, 가끔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과연 슬기롭게 헤쳐나갈 길은 없는 걸까? 다시 용기를 내고, 희망을 꿈꾸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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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 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도 읽힌다.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 작업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엎어지고 무기한 연기되고 떼이고, 영화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배신당한 감정을 달랬던 기억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다. 추운 날씨에 ‘빤스’와 ‘난닝구’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남자(김영민)가 누군가에게, 아니 대부분에게 어디서 저런 미친놈을 봤나 싶은 반응일 터. 찬실에게는 맘보춤이 인상적이었던 <아비정전>(1991)의 장국영이 떠올라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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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들이 기억하는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또 하나의 콘텐츠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다. 찬실은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힘들 때 재생해 듣고는 하는데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게스트로 나온 부분이 극 중에 인용된다. 찬실이가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1989) 편이다. 그 내용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 재생된 건 <집시의 시간>이 아니라 이를 소개하는 정성일의 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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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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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의 첫 페이지에는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으려는 장 뤽 고다르의 <누벨바그>(1990)의 한 장면이 캡처되어 있다. 영화가 되는 세상이란 곧 영화를 보며 영화를 쓰며 영화를 만들며, 결과적으로 영화를 하며 쌓은 우정의 이데아다. 영화는 절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수십, 수백 명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행위다. 영화는 혼자서 볼 수 있지만, 보고 난 후 그 여운과 해석을 글로, 말로 나눌 때 더 큰 감흥이 되어 의미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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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복을 잃은 찬실에게 복을 찾아주는 건 다시, 영화다. 영화가 매개되어 만난 사람들이다. 영화 현장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배우 소피(윤승아)는 일이 없다는 찬실을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가사도우미로 들인다. 단편영화를 만들지만, 벌이가 시원찮아 소피의 불어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영(배유람)은 찬실의 시린 옆구리를 데워준다. 영화 일을 잃고 달동네로 옮긴 찬실의 월셋집 주인 할머니(윤여정) 왈,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찬실을 딸처럼 살뜰히 챙기는 마음이 따뜻하다. 일복은 없지만 사람 복은 있는 찬실의 세상은 언젠가, 아니 지금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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