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2020년, 여전한 그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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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사망한 현지 시각 1월 26일, 비보의 충격을 뒤로하고 세계 각지의 뮤지션들은 로스앤젤레스의 스테이플스 센터로 모여들었다. 제62회 그래미 시상식을 위한 자리였다.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RAS)의 최초 여성 CEO 데보라 듀건의 갑작스러운 해임과 그에 맞선 듀건의 그래미 내 성추행 및 불공정한 투표 방식 폭로,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팝계 최고 인사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제이지의 불참 등 올해의 그래미는 시상 전부터 먹구름이 잔뜩 낀 채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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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공연이 이목을 끌었다. 트리뷰트와 추모 연주, 신인들의 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로 활기가 가득했다. 시작부터 폭발적인 랩과 노래, 플루트 연주로 좌중을 압도한 리조와 작년 불발된 참석을 만회한 아리아나 그란데, 자신의 색깔과 다른 잔잔한 기조로 가창력을 드러낸 빌리 아일리시 등 작년의 아이콘들이 현장을 밝혔다. 또한 1980년대 랩과 록의 파격적인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던 에어로스미스와 런 디엠씨의 'Walk this way' 재현, 2016년 작고한 프린스를 위한 헌정 무대도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단연 핵심은 2018년 여름 약물 과다복용으로 입원한 후 돌아온 데미 로바토. 떨리는 호흡, 긴장된 목소리로 울음을 참으며 노래하는 그의 복귀를 객석의 뮤지션들은 기립 박수로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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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역시 방탄소년단의 등장이 가장 큰 화제였다. 2019년 한해의 히트곡 'Old town road'의 주인공 릴 나스 엑스가 자신의 성공을 기념하며 꾸민 '올드 타운 로드 올스타즈'(Old Town Road All-Stars) 무대에서 그들은 곡의 리믹스에 참여한 뮤지션 빌리 레이 사이러스, 디플로, 13세 컨트리 스타 메이슨 램지와 함께 스테이지에 올랐다. 짧은 시간동안에도 존재감을 피력하며 그들은 한국인 최초의 그래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케이팝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진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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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래미의 후보군에는 유독 신인과 여성이 강세였다. 데보라 듀건의 영향 아래 4개의 본상 부문의 절반 이상이 여성 후보로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 둘의 음악 스타일이 상반되기도 하고, 양쪽 모두 작년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터라 이 각축전의 결과는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상 전 앞 다퉈 수상 결과를 예측하던 현지 매체들도 제각각의 의견들을 내놓으며 결말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쟁쟁한 본상 경쟁. '이 상은 빌리가, 이 상은 리조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는 그림을 기대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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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주인공은 단 한 명이었다. 18세 초신성 빌리 아일리시가 그래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상을 싹쓸이한 것. 제너럴 필드라 불리는 이 본상 4개 부문을 독식한 것은 1981년 크리스토퍼 크로스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최연소 뮤지션의 칭호도 2010년 20살의 나이로 같은 상을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를 제치고 그가 차지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기록 경신에 마지막 올해의 레코드 상이 발표된 순간에는 아티스트 본인도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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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리조는 빌리 아일리시보다 2개나 많은 8개의 상을 노린 최다 노미네이트 뮤지션이다. 그런 그가 최우수 팝 솔로 퍼포먼스 상 하나에 만족하고 돌아가야 했으니 꺼림칙하다. 2017년 발매한 'Truth hurts'를 작년 역주행시키며 인터넷 매체와 틱톡에서 확실한 호응을 확보하고 오버사이즈 여성에 대한 편협한 시선에 맞서 당당한 모습을 보인 그는 작년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적어도 그가 본상에서 하나는 가져갈 거라는 다수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에 그간 유색인종을 배제해온 그래미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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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인물은 이뿐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이 2019년의 노래로 기억할, (곡의 완성도가 어떻든 많은 사람의 귀에 박혀있을) 'Old town road'의 릴 나스 엑스도 최우수 뮤직비디오 상을 제외하고는 웃지 못했다. 음악 내적인 부분 보다 틱톡과 밈을 비롯한 외적인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곡 또한 프로듀싱과 믹싱의 숙련도에 중점을 두는 올해의 레코드에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어왔다. 백인의 전유물인 컨트리와 신세대의 트랩 힙합을 섞어 창시한 음악의 파급력 덕이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며 19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세운 그마저 그래미는 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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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을 늘 배척해온 그래미가 작년부터 본상 후보군을 5명에서 8명으로 늘린 것에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이 진정으로 다양한 뮤지션들을 포용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보여주기식 변화인지 모른다는 것.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올해도 구색 맞추기에만 급급한 모습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자격 있는 흑인 뮤지션들을 따돌린 그래미는 여전히 '화이트 그래미', '백인 잔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차일디시 감비노가 본상 2관왕을 이룬 작년보다 더 퇴보했다. 그래미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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