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서로를 통과한 그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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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모리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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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작된 영화,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수상한 <모리스>가 이제야 한국에 왔다. 32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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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역을 맡은 배우 제임스 윌비와 ‘클라이브’ 역의 휴 그랜트는 빛나는 청춘의 얼굴 그대로이고 영상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특유의 우아함으로 인상주의 그림처럼 속절없이 아름답다. 배경은 20세기 초 영국 케임브리지 교정과 기숙사, 그리고 계급사회의 중산층 가정. 화면 속의 구시대 물품들-팁으로 주는 금화, 피아놀라 레코드, 노퍽 재킷 등은 기나긴 시간 여행의 소구력으로 나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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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니다. 원작인 E. M. 포스터의 <모리스>는 1914년에 완성된 뒤 작가가 죽은 다음 해인 1971년에 출간되었다. ‘작가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판할 수 없었던’ 자전적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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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도 영화도 동성애를 다루었기에, 세상이 규정 지은 소동에 휘말릴 수 없어 그 긴 세월을 건넜던 것이다. 나는 먼 길을 돌아온 영화 <모리스>를, 번역서 <모리스>를 보고 읽었다. 가을의 저물며 반짝이는 기운이 책과 영화에 그대로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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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친구인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영민했고 유쾌한 삶의 태도로 학업과 클럽 활동 등을 활발히 즐겼다. 잘 통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고요한 시간을 보낼 때, ‘명예도 가족도 재산도 모두 잃어버려야 했던 불법’ 애정 표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린 시절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모리스’에게 교장 선생님이 당부하지 않았던가, ‘어머니 보시기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말라’고. 그들은 신사가 되는 법을 교육받았고, 미래를 보장받은 근사한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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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는 두 사람의 심리가 좀 더 상세하고 친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심리적 갈등, 당혹감과 되돌릴 수 없는 열정으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은 그러나 조금 달랐다. 모리스는 거침없었고 클라이브는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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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작에 충실했다. 작품의 시작도 주요 대사도 같았다. 새로운 동성 사랑을 찾은 모리스가 결혼한 뒤 정치 활동을 하며 명예를 얻어가는 클라이브를 만나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장면의 결은 달라졌다. 4부로 구성된 원작의 마지막 문단은 클라이브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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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것이 타협도 없는 끝이라는 걸 몰랐고, 그가 다시는 모리스와 마주치지도 못하고, 그를 보았다는 사람조차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오솔길에 잠시 서서 기다리다가 원고를 수정하고 앤에게 진실을 감출 방도를 궁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 앤의 내조로 순조로운 정치 활동을 하는 클라이브에게는 연설 원고가 더욱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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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리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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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설 원고를 들고 들어온 클라이브가 쓸쓸한 얼굴로 창문을 열고 밤 풍경 속에서 케임브리지 시절의 모리스가 “어서 나와”라고 손짓하는 환영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분명히 회한의 표정이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각본과 제작으로 참여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생각하면, 이별도 사랑도 아픈 그들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의 한 컷을 선물처럼 남겨두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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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자신을 위해 미래를 희생한’ 연인 ‘알렉’을 만나러 보트 창고로 달려간다. 계급사회에서는 하인이었던 알렉과 절대로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클라이브와 사랑할 때처럼 순수한 모리스는 거침없다. 동성애자인 자신이 병에 걸린 줄 알고 치료까지 받았던 적극적인 삶의 소유자 모리스는 역시 사랑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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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는 다시 사랑으로 나아갔으며 클라이브는 현실로 더 깊이 들어갔다. ‘네가 날 사랑하듯이 나도 널 사랑해’라는 고백으로 시작한 사랑은 ‘지옥에나 가버려. 네가 갈 곳은 거기야’라고 끝나갔으며 그렇게 두 사람을 통과한 첫사랑은 각각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 사랑이 빈집에 갇힌 것은 아니다. 빈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므로 사랑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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