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드래그 퀸 모지민, 끼스럽고 아름다운 '모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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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는 MORE고 毛魚(털 난 물고기)다.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드래그 퀸 아티스트 모지민 작가는 첫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태원 지하 클럽 의 드래그 퀸 공연부터 2019년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뉴욕 무대까지 수많은 공연에서 끼를 발산해 온 아티스트 ‘모어’. 그간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들을 에세이로 쏟아내며 그는 비로소 ‘나는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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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를 꿈꿨던 드래그 퀸 아티스트

첫 책을 낸 기분이 어때요?

책이 출간되자마자 저희 아파트가 뒤집어졌어요(웃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사는데요. 6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몰려와서 사인 받고 난리가 났어요. 언니라고 부르라 해서 옆집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언니가 됐고요.

제목이 강렬했어요. ‘털 난 물고기 모어’. 작가님의 활동명이기도 한데요.

원래 영어 ‘MORE’로 활동하다가, 뮤지션 이랑과 함께했던 메일링 서비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를 할 때 한자어 뜻을 붙였더니 반응이 좋은 거예요. ‘털 난 물고기’는 이질적이고, 사회 어디에도 속하기 애매한 존재잖아요. 저를 가리키는 완벽한 2음절이죠.

원래 발레리나가 꿈이었다고요. 

체육 시간에 국민 체조를 춤 동작처럼 하니까, 선생님이 놀라서 부모님한테 ‘얘, 무용 시켜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 고향은 정말 논밭밖에 없는 시골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발레 하던 제자가 하루아침에 드래그 퀸 아티스트가 되어 나타났는데, 선생님이 ‘너무 강렬하고 아름답다.’고 하시더라고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드래그 퀸 퍼포먼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돌이켜 보면, 제 의지가 아닌 귀신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귀신이 제 머리채를 잡고 이태원 지하단칸방으로 데려간 거죠. 이태원 공연장에서 분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데, 사람들이 제 끼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더라고요. 물론 그곳도 모든 게 폭력이었어요. ‘난 아름답게 살고 싶었는데, 왜 지하 세계에 들어와서 밤마다 이 일을 해야 하나.’ 매일 울었죠.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시간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걸까 싶어요.

2019년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 무대에 섰어요. 1969년 성 소수자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한 항쟁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자리였죠.

60년 전통의 유서 깊은 라 마마 실험극장에 서게 된 건, 정말 꿈같은 일이었어요. 6월 한 달은 뉴욕 곳곳이 무지개로 물들고, 드래그 퀸 분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녀요. 비행 시간, 연습량 등 공연 환경은 열악했지만, 너무나 황홀했어요. 우상이었던 <헤드윅>을 연출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과 친구가 되어 그의 집에 머무른 것도 엄청난 행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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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다.’고 쓰기까지

20년간 드래그 일을 하면서 이렇게 느끼셨다고요. “셀 수 없이 많은 무대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나는 없다.”(248쪽) 

무형의 퍼포먼스를 수없이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묻게 됐어요. 수많은 무대에 서도 공연이 끝나면 관객석은 텅 비고, 그때마다 몸에는 뼈 시림과 고통이 밀려왔죠. 찬란했던 순간이 지하로 꺼지는 극렬한 고독을 느꼈어요. 사람들은 당연히 제가 무대에서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달픔이 덕지덕지 있었던 거예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저의 언어와 감정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듯했고요.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요.

무대가 끝난 뒤, 일일이 관객을 찾아가서 제 감정을 나눌 수가 없잖아요. 책이 나온 지금은, 활자로 표현된 제 감정들이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게 됐어요.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보고 좀 느껴라.’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이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어요.

‘뒤집어져, 니씨엄뚜.’처럼 작가님 특유의 말투가 글에 살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쓰길래 이렇게 검열 없이 자유자재로 표현할까 궁금하더라고요.

믿기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글을 스마트폰으로 썼어요. 크로키 누드 모델로 일하러 갈 때, 이동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지하철에서 할 일이 없어서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만약 컴퓨터 앞에 앉아서 썼으면 호흡이 길어졌겠지만, 스마트폰으로 쓰니 제 말투가 그대로 살아서 순식간에 한 편의 글이 되더라고요.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로 옮겨 계속 고쳤죠.

황인찬 시인이 추천사에서 “시이면서 시가 아니고, 일기면서 일기가 아니며, 말이면서 말이 아닌 것이 바로 모어의 글쓰기다.”라고 했죠. 일기, 소설, 희곡, 시처럼 다양한 형식이 파격적으로 펼쳐지는데요.

애초에 형식을 정해 놓지 않고 쓰는데, 주변에서 특이하다 하니 저도 신기했어요. 원고를 쓸 때, 뮤지션 이랑이 집에 놀러 와서 「마더 종잘레나와 벌미미의 산책」을 읽더니 “모어, 이거 희곡이잖아. 정말 대단하다.” 하면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에세이가 갑자기 시, 희곡으로 계속 바뀌니까 상상 이상이었나 봐요.

글 「아가야」는 정말 통쾌했어요. 차별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에게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놓죠.

어떻게 하면 나를 아프게 한 잡것들을 밟아 죽일 수 있을까, 어떻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단숨에 썼어요. 문장을 막 쏟아내다 보니 어찌나 쓰는 맛이 나는지 통쾌함 그 자체였어요. 

슬픈 장면이 나오다가도 웃음이 터지는 게 작가님 글의 특징 같아요. 굉장히 솔직하기도 하고요.

제 글은 느닷없는 문장이 갑자기 들어가고, 슬프다가도 웃긴 대목이 나오죠.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여시같이’ 세상에 통용될 수위까지만 딱 넣어 놨어요(웃음). 아름다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작가라면 솔직하게 다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날도 있는 법」은 500연이 넘는 장시예요.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님이 지닌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쏟아지는 것 같았어요.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글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기까지 하루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남편과 고양이 모모 등 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죠. 지하철에서 쓴 메모를 싸그리바그리 모아서 한 번에 써 내려갔는데요. 끝을 내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끝날 듯 말 듯 계속 이어가면서 총 500연이 넘는 두 편의 시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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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님의 드래그 퀸 퍼포먼스에는 타령, 한복 등 한국 예술의 영향이 눈에 띄어요. 이번 책에도 그런 취향이 엿보이는데요. 

전라도에서 성장한 것이 제 예술의 큰 뿌리예요. 예술고등학교를 다닐 때, 영화 <서편제>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창을 달달 외웠어요. 국악 전공 친구들이 “너는 그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뭐가 좋다고 따라 하냐.” 할 정도로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나의 감성이 다르다는 걸 느꼈죠. 그런 정서가 남아서 이번 책에도 전라도 사투리가 ‘허벌나게’ 나오죠(웃음).

‘끼대디’, ‘끼마미’ 부모님 이야기도 풀어놓았어요. 한 번도 “너 이상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주셨다고요. 

저희 가족이 3남 1녀인데, 부모님은 아들인 저를 딸처럼 키우셨어요. 시골에서 사람들이 놀리면,부모님만큼은 제 편을 들면서 예쁘다고 하셨죠.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를 찍을 때, 부모님께 처음으로 드래그 퀸 분장을 보여드렸어요. 근데 아빠가 한마디 하시는 거예요. “너무 좋다. 도깨비 같고!” 엄마랑 깔깔 웃으면서 뒤집어졌거든요. 사랑의 세계 반대편에는 엄청난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 남편, 고양이 모모는 제 인생에 정말 중요한 존재들이에요.

2017년 5월 24일 한강에서 결혼식을 올린 일을 예술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어요.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결혼식이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무대였어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으니, 이 사랑을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편을 만난 지 20년이 넘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장미가 피는 5월에 한강에서 식을 올리게 됐죠. 비 예보가 있어서 직전까지 긴장했는데, 당일에는 아주 화창하고 맑은 거예요. 정말 인생에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순간이 있나 싶었어요. 이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곤 해요.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가 곧 개봉하죠.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찍었다고요.

영화가 완성된 지금은 뿌듯하지만 고단한 과정이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 도와줬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모든 분장, 의상, 퍼포먼스 등을 제가 홀로 소화했거든요. 얼마 전에 가수 인순이 선생님을 드래그 퀸으로 변신시켜준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이걸 혼자 다 하냐고요. “선생님, 저는 그렇게 하고 공연도 해요.” 하고 대답했죠.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공연하고 눈밭에도 구르고 정말 고생을 많이 하거든요.(웃음) 예쁘게 나오는 걸 다 포기하고 그냥 끊임없이 나를 보여줘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매 순간 시간에 쫓기고, 집에 돌아가면 왜 그것밖에 못 했을까 자책도 하고요. 그렇게 힘들게 찍은 영화인 만큼, 빨리 관객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항상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걸 꿈꿔요. 아름다운 춤을 추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짓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간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말하기 조금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무후무한 독창성을 지닌 아티스트가 되는 것. 그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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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민

세계적인 드래그 퀸 아티스트. 뉴욕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과 2019 헤드윅 ‘The Origin of Love’ 투어에서 공연했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가 6월 23일에 개봉된다.




털 난 물고기 모어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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