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나는 여전히 타인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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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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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교적 간단히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독자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에 의문을 품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당연히 타인의 시선에도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피하는 편이다. 나와 온도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들에게 받는 영향이 너무 커서, 가까워질수록 내 삶의 체계가 바뀌거나 뒤섞여 버리고는 했기에 본능적으로 경계할 때가 많다.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가족 그리고 친구, 때로는 선생님, 애인까지. 그들은 대부분 자기 확신이 강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나처럼 확신이 부족한 사람은 그 영향력을 열심히 받아먹고는 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영향을 미치는 건 꽤 달콤한 일이기에 그들은 교주처럼 내 곁에 머무르며 본인의 생각을 내게 주입했고, 나는 그걸 여과 없이 흡수했다. 서로가 원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면 매 순간 상대의 생각이 필요해졌다. 매번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불안감이 앞섰고, 그들이 날 떠나면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말 잘 듣는 반려동물이 되어 버렸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에 삶은 간단해졌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어렵사리 관계를 끊어 낸 후에도 자꾸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던 건 내가 불확실해서, 자꾸만 확실해 보이는 사람 곁으로 가게 됐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어른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면서 타인에게 영향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뒤늦게나마 내 생각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그게 별로든 재미가 없든 잘못됐든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남는 과거도 있듯, 그 시절 내게 영향을 줬던 강렬한 타인들은 여전히 내 안에 모여 앉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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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심보선,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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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타인을 품고 사는 건 나에 대한 소문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일이다. 내 안에 숨은 타인들은 언제나 나보다 목소리가 크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한다. 그들은 대체로 나를 무시하고, 하찮게 보며, 믿지 않는다. 고치고 보완해야 할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글을 쓸 땐 내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누군가를 만날 땐 그 누군가가 내게 내린 부정적 평가에 대해 속삭인다. 외모를 평가하고, 능력을 불신한다. 그들은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타인’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여 내게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나는 늘 전전긍긍하며 불안에 떤다. 내 마음속 그들이 내게 속삭이는 것처럼 실제 내 눈앞에 있는 사람도 나를 그렇게 평가할까 봐,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믿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얼마 전 SNS를 완전히 그만둘까 고민하며 일주일 정도 접속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게시물에 하트를 눌러 주지 않아서,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 글을 좋아하거나 언급하지 않아서, 우울한 사람이 싫다는 글을 마주해서…. 마음이 약해지자 그들이 또 일어나 활개를 치며 마구 소문을 만들어 냈다.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널 싫어해, 무시하고 있어. 네 글은 수준 낮고 형편없어서 그 사람들이 좋아할 수가 없어. 우울한 사람이 싫다는 건 너를 저격한 거야, 쓸데없는 글 좀 올리지 마.’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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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심보선,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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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는 것도 지쳐서 그들이 만들어 낸, 아니 내가 만들어 낸 소문을 그대로 적어 SNS에 올렸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도,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고 팔로어가 후두두 떨어져 나가겠지 생각했는데, 팔로어는 줄지 않았고 위로와 공감의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허탈했다. 내가 만들어 낸 이상한 소문은, 역시 소문일 뿐이었다. 문득 작년에 봤던 책에서 “내가 상상하는 타인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타인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내 마음속 타인이 아닌 내 눈앞에 있는 타인은 어떤가.


그들의 진짜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곁에 있는 이들은 나와 내 글을 좋아하고, 외모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며, 내 아픔을 걱정한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허상을 쫓아내기 위해 댓글을 하나하나 곱씹어 읽었다. 아주 쉽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여전히 타인을 품고 산다. 아마 많은 이가 그럴 것이다.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세우는 무시무시한 허상을 누르고자 나를 보듬는다. 힘이 됐던 편지와 글, 메시지 따위를 꺼내 읽는다. 그리고 말을 건다. 나한테 나쁜 모습만 있는 건 아니라고, 습관처럼 좋은 건 잊고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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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심보선 저 | 문학과지성사
사소한 인간의 사랑과 지독한 이별 후의 시간에 대한 노래들로 가득하다. 마른 바람이 휑한 시멘트 골목을 돌아나갈 때, 우리는 좀더 자주 이 구절구절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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